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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석기 유적
  • 화순 도산유적 : 지석강상류에 위치하며, 중기구석기시대로 추정되는 석기 출토
  • 함평읍 서해안고속도로변에 위치하며, 구석기, 신석기, 철기시대의 유물 발견

▶ 청동기 유적
  • 고인돌 : 전남에 있는 2만여기의 고인돌중에서 2/3 이상이 영산강유역에 분포 화순 대신리 및 효산리 고인돌군 : 국가 사적 제410호, 세계문화유산 등재(2000년),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를 있는 보검재를 중심으로 총 596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주변 산지에 고인돌 채석장이 위치함
  • 화순 대곡리 청동기 유적 : 국보 제143호, 지석천 연안 구릉지의 적석목관묘에서 세형동검, 잔무니거울, 방울류 출토
  • 함평 초포리유적 : 고막원천 연안 구릉지에 위치하며, 돌무지 움부덤에서 잔무니거울, 방울류, 세형동검, 조각칼 등 26점의 유물 출토
  • 함평 중랑유적 : 서해안고속도로 함평IC 공사장에서 출토된 유물로 청동기시대 집자리 3채, 고인돌 1기, 철기시대 집자리 10여채, 움무덤 2기 등이 발견됨
  • 영암 장천리유적 : 전라남도 기념물 제28호, 과거 남해만의 바다가 바라보이는평지에 위치하며, 움집, 세형동검편, 민그릇항아리 등 발견
  • 기타 유적 : 무안 양장리 유적

▶ 삼국시대
  • 광주 신창동 유적 : 국가 사적 제 375호, 초기철기시대의 유적, 영산강 연안 배후저습지와 구릉지에 위치하며, 주거지역, 매장지역, 생산지역이 공존하는 복합유적임. 출토된 유물을 통해서 기원 전후의 벼농사, 나무연장, 칠의 사용, 그릇의 종류와 가마의 구조, 집의 구조, 무덤의 종류 등이 밝혀짐
  • 함평 만가촌 고분군 : 전라남도 기념물 제55호, 함평군 월야면 예덕리 고막원천 상류의 구릉지에 9기의 고분이 위치, 밀집도가 놓고, 사다리꼴의 분구안에 여러개의 배장 시설을 갖추고 있음
  • 나주 복암리 고분군 : 국가 사적 제404호, 영산강과 분평천이 합류하는 구릉지에 위치하며, 경지정리사업 전에 7기가 있었으나 현재 4기가 남아있음. 3호분에서 옹관, 석곽옹관, 횡구식 석곽, 횡혈식석실 등 42기가 남아있음.
    호분에서 옹관, 석곽옹관, 횡구식석곽, 수혈식석곽, 횡혈식석실 등 42기의 다양한 매장시설이 확인되어 '무덤박물관'이라는 별칭을 얻음. 금동신발, 은제관식, 큰칼, 금귀고리 등이 출토되어 4세기경에서 6세기 중엽에 이르는 마한세력에 의해서 조성된 집단묘로 추정됨
  • 나주 반남 고분군 : 나주시 반남면의 자미산(98.3m)을 중심으로 대안리, 신촌리, 덕산시 일대에 군집되어 있는 고분군으로, 사적 제76호(대안리 고분군), 77호(신촌리 고분군), 78호(덕산리고분군)로 지정되어 있음. 4세기 호반에서 6세기 중엽까지 영산강유역의 토착 마한세력에 의해서 조성된 것으로 추정됨
  • 기타유적 : 광주 월계동 장고분, 고아주 쌍촌동 유적, 광주 명화동 장고분, 장성 영천리 고분, 나주 회진토성, 함평 용산리 유적, 함평 신덕 고분, 함평 석계 고분군, 영암 옥야리 고분군, 영암 내동리 고분군, 영암 구림리 토기요지, 무안 인평유적

▶ 영산강의 주운
  • 영산강은 고대부터 한반도 내륙과 연안을 잇는 교통로였고, 중국과의 교류의 관문 역할을 하였음
  • 영산강은 하상경사가 완만하고 하구둑이 완공되기 이전까지는 영산포 부근까지 조석의 영향을 받았던 감조하천으로 내륙수로를 이용한 주운기능이 활발하였음
  • 기록에 의하면 영산강의 주운은 하구에서 약 74㎞ 상류에 위치한 광주광역시 광산구 서창까지 가능했던 거스올 전해지지만, 영산포 상류 구간은 수심이 얕아 작은 배만 통과하였고 서창까지는 뗏목이 운행되었음. 영산강 지류인 함평천은 사포 상류7.9㎞ 지점에 위치한 토교까지. 곡막원천은 석과정에서 6.6㎞ 상류에 있는 고막원까지 만조시 50~100석을 싣는 범선이 운항하였음
  • 목포~영산포간에는 5~10리마다 포구가 위치하여 약40개에 달하였다고 함
  • 주요타루터 : 주룡, 청호, 몽탄, 자구리, 뒤구지, 북석포, 신설포, 사포, 고문진, 중촌포, 석관정, 사암, 재창, 터진목, 서촌, 동말, 구진포, 영산포, 동구나루 등
영산강 주운의 시기 구분

  • 제1기(1897년 목포항 개항 이전)
    • 세곡 운반 등 화물 운송과 문화 교류 및 사신 왕래, 수군 이동 및 전략기지와 같은 군사적 목적, 어로활동 공간 등으로 활용
    • 고려 성종 11년(992년)에 조운을 위하여 영산강유역에 나주 치을포의 해릉창, 영암 해창리 신포의 장흥창 설치
    • 조선 태종 8년(1408년), 대굴포(함평군 학교면 곡창리)에 수군처치사영(水軍處置使營)을 설치하여 24척의 군선과 수군 1,895명을 주둔시켜 외적의 침략에 대비


  • 제2기(목포 개항 이후~1912년 국도 1호선, 1913년 호남선 철도 개통)
    • 목포항의 개항 이후 일본인들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내륙수로에 동력선과 범선이 운항되면서 주운이 가장 활발하였던 시기


  • 제3기(도로와 철도 개통 이후~영산강하구둑 축조)
    • 주운의 중요성이 점차 낮아지면서 쇠퇴하였던 시기였으나, 20∼30톤급의 중선배가 조석을 이용하여 오르내리면서 영산포는 주운 및 육상교통 중심지의 이점을 살려 농산물의 집산지, 화물의 적환지로서 급성장하여 1937년 읍으로 승격
    • 영산강의 주운기능은 1977년 이후 사실상 중단된 상태임


  • 영산강의 주운기능은 1977년 이후 사실상 중단된 상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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